신역세권 개발 (12) 충정로역

우리, 살아온, 동네 2011/05/14 18:38 Posted by 쥬리(강민진)
신역세권 개발
충정로역⑫
서울도심 신촌 부도심 길목
근린상가·오피스 임대사업 권장
올연말 5호선 개통···유동인구 7만여명 예상

서울 충정로역 일대가 지하철 환승역 개통을 앞두고 대단위 도심업무지구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충정로역세권은 행정구역상서대문구 충정로 북아현동, 중구 중림동에 속하며 지상으로는 서소문로와 충정로가 교차하고 지하로는 지하철 2호선과5호선 환승역이 있다. 

현재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의 하루 이용인구는 2만명선이며 5호선이 전면개통되는 올해말쯤이면 7만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는내다본다.

서대문로 및 충정로변 도심재개발이 끝나는 2천년대 초반에는 20만명선으로 이용인구가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이곳의 토지는 도시계획상 준주거 및 일반주거지역에 속하며 대로변은 모두 2종미관지구로 지정돼 있다.

그동안 충정로역 주변은 마포 영등포 신촌부도심을 도심과 연결하는 관문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이 도심지역의 배후업무 및 주거지로 상당히 뒤처진 상태다.

서울시와 관할인 서대문구및 중구는 이 지역을 서울 도심에서 영등포·신촌부도심으로 이어지는 중심업무·상업지구로 개발키로 하고 서대문로충정로 마포로 대로변 일대를모두 도심재개발지구로 지정했다. 이미 일부는 사업에 착수한 상태이며 5호선이 개통되는올해말 이후 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세워질 전망이다.
◇상권현황

종로와 을지로 등 업무중심지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도심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단절돼매우 낙후된 노선상가지대이다.

충정로 고가도로 삼거리 일대는 공예가구상가 거리로 유명하며 거의 모든 상표의 가구가 입점해 있다. 대단위 또는현대식 상가는 찾아보기 어렵고 대로변 대부분은 가전대리점 분식집 이·미용실 세탁소슈퍼마켓 등 배후유동인구를대상으로 한 2~3층 높이의 소규모 근린상업시설이 군락을이룬다.

아직은 역세권 개념이 없으며 지역상권을 주도할 역세상가 또한 등장하지 못한 상태다.
◇부동산시세

지하철 5호선 환승역사 개통과 도심재개발을 통한 업무기능확대 기대로 땅값이 상당히오른 상태이다.

지하철5호선 새 역사와 2호선 기존 역사 사이가 가장 비싸 3천만~4천만원선을 호가하고 있으며 그밖의 대로변은 2천만~3천만원의 가격대를 형성한다.

대로 뒷면은 1천만~1천5백만원의 시세를 보이고 있는데종로학원이 들어설 자리 주위는 2천만원선이다.

상가 임대료는 1층 기준으로1급지가 7백만~8백만원, 2급지는 4백만~5백만원 수준이다.
◇투자전망

충정로역세권 일대는 서울북부지역 환승역세권 가운데업무지역으로의 개발잠재력이가장 높으면서도 개발상태는가장 뒤처진다.

이러한 특징을 감안, 도심재개발구역이 아닌 헌집의 경우다가구형 점포주택이 근린상가소규모 틈새오피스 등으로 재건축, 임대사업을 노려볼 만하다.

대로변 토지의 경우 대부분도심재개발지역에 포함돼 단독개발이 불가능한 만큼 높은 지가를 감안하면 매매시기로는부적절하다. <姜炯求(강형구)기자>

 

중림동은 중림동 외에 의주로 2가, 만리동 1,2가 3개 동까지 포함한다.

조선 초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나누었을 때, 서부 반석방(盤石坊, 하위에 약전중동과 한림동이 있었음)과 반송방(盤松坊)에 속했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약전중동에서 ‘중동’을, 한림동에서 ‘림’ 자를 따와 중림정(中林町)으로 불렀다가 지금의 중림동이 되었다.

중림동은 약현(藥峴, 약밭골․약고개라고도 함)이라 할 정도로 예로부터 약초 재배하는 밭이 많았다. 조선 시대에는 서울 장안의 한약재를 공급하는 곳이기도 했다. ‘약전중동’이란 명칭은 약현 중에서도 "가운뎃말(한 가운데 마을)"이었던 데서 유래했으며, ‘한림동’은 조선 시대에 이정암 3형제가 모두 이곳에 살면서 한림 벼슬을 지냈던 데서 유래했다. 중림동의 옛 마을 이름으로는 가운뎃말, 한림골, 형제우물골 등이 있다.

의주로는 서울-의주 간 시발 지역이었다. 북으로 가는 도성문인 사대문에서 두 번째 블록으로 의주로 통하는 길이란 뜻에서 일제 경성부 시대에는 ‘의주통2정목’이라 하던 것을 의주로로 고친 것이다. 만리동은 광복 후 처음 만들어진 이름인데, 만리현이란 이름에서 유래했다. 세종 때 한글 창제를 반대한 최만리가 살던 곳이어서 만리동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1947년 말 중림동 관내의 각 동을 살펴보면, 의주로2가에는 의주로 1, 2가동회, 만리동1가에는 만리동1가동회, 만리동2가에는 만리동2가서부동회와 남부동회가 각각 있었다. 1955년 4월 18일 서울시 조례 제66호 ‘동설치조례’에 따라 동장 관할 구역의 행정동제를 실시할 때 중림동 일원을 관할하는 중림동사무소가 만들어졌다. 1975년 10월 1일 대통령령 제7816호로 구, 동의 관할 구역이 전면적으로 재편성되면서 중림동은 중구로 편입되었고, 중림동을 비롯해 의주로 2가 일원이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80년 7월 1일 서울시 조례 제1413호 ‘동사무소 설치조례’에 따라 만리동사무소가 없어지고 중림동 관할 구역으로 병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경향신문 | 1981.07.14 기사

 

問(문)

 

중구 중림동 종근당제약 건너편인데 재개발지역에 포함돼있는지요. 포함되어 있다면 사업 시행은 언제쯤입니까. 서경태 (중구 중림동 754)

 


答(답)

 

중림동 재개발 구역으로 지난 2월 20일 추가 지정된 지역에 포함됐습니다(도표3). 사업시행은 구역 내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가 있을 경우 주민 의사가 반영된 사업계획을 수립, 시행케 되므로 그 시기는 현재로서는 미정입니다. 따라서 사업 내용도 사업 계획 및 토지에 대한 관리처분 계획이 수립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 재개발2과)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런 걸 검색했다. 이거이거, 은근 재밌는 걸~ ^^)




동아일보 | 1976.03.05 기사(기획/연재)

 

中林洞(중림동)

李朝(이조) 때 名臣(명신)들의 宅地(택지) … 藥田(약전)으로도 有名(유명)

 

서부서울역앞 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萬里洞(만리동)고개로 넘어가는 큰길과 서대문방향으로 가는 길 사이에 阿峴(아현)삼거리고 넘어가는 길이 뚫려있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켜갈 정도의 좁은 이 언덕길이 옛날약고개(藥峴(약현))로 지금 중림동의 한복판이다.

중림동이란 동 이름은 1914년 京城府(경성부)를 1백86개 동으로 구분할 때 붙여졌다. 이 동네는 원래 西部(서부) 盤石坊禾廛下契(반석방화전하계)의 翰林洞(한림동)과 藥田契(약전계)의 中洞(중동), 그리고 盤松坊車子里契(반송방차자리계)의 兄弟井(형제정)이었다가 藥田中洞(약전중동)과 翰林洞(한림동)으로 되었고 두 개 동 중 한자씩 올따 中林洞(중림동)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옛날 이 일대는 넓게 약밭이 있어 장안에 약을 공급해왔는데 한복판을 중동, 위쪽은 약전상동, 아래쪽은 약전하동이라 했고 가운데를 뚫는 고갯길이 藥田峴(약전현)(혹은 약현)이라 해왔다.

 

이 일대는 또한 주택지로 이름이 높아 名臣(명신)이 많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한림동은 이조 선조 때 명신으로 요직을 거쳤던 이정암 정형 정* 삼형제가 모두 한림 벼슬을 지내 그들이 살던 곳을 한림동이라 하게 되었다고 東國餘地備考(동국여지비고)에 적혀 있다.

 

또 이조 세종 때에 나서 예조판서까지 지낸 성현의의 집도 바로 약전현에 있었다 한다. 성현의 집은 이태조에게 한양(서울) 도읍을 일러주었다는 무학대사가 터를 잡아주었다 한다. 성현의 집과 관련, 이런 이야기도 전해온다. 하룻밤 성현이 홀로 뒷동산에 올라 시를 낭송하는데 성현의 집에 놀러왔던 손님이 새벽 닭 우는 소리에 깨어 시 읊는 소리를 듣고 성밖으로 내다보니 신선이 내려온 것 같아 황망히 달려나갔다가 주인과 손이 서로 알아보고 크게 웃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성현의 집이 명당이었다는 이야기인 듯하며 그래서 그런지 이 일대에는 주택이 일찍부터 많이 들어섰다 한다.

 

또 이곳에는 장안에 모두 5개소인 싸전(쌀가게) 중 하나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중림동은 동족에 의주로2가 봉래동2가와 접하고 남쪽으로 만리동12가가 있으며 서쪽은 충정로3가 북쪽은 합동 의주로2가가 경계하고 있다.

 

55년 지방자치법 실시로 독립된 동사무소가 약고개 중턱에 설치되었다.

 

옛 약고개의 모습은 이제 찾을 길 없고 다만 이웃 충정로3가에 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고약」 본포가 있을 뿐이다.

 

광복 후 46년 서울의 왜식동명을 고칠 때도 중림동이란 이름을 그대로 지녔던 이 조용한 주택가는 작년 10월 1일 서울시의 관할구역 조정 때 서대문구에서 중구로 옮겨 소의문 밖 서부변방에서 어느새 서울의 중심부가 되어버렸다.


[사진 설명] 중림동사무소 앞에서 아현삼거리로 넘어가는 이 길은 옛날 약고개로 유명했다.